
어느 날 출근을 못한 과장님
2013년의 일입니다. 전 직장에 P 과장님이 계셨습니다. 탁구를 얼마나 잘 치셨는지 사내 대회는 거의 싹쓸이 수준이었고, 보고서 하나를 만들어도 한 장에 핵심만 딱 담아내는 분이었습니다. 성격은 꼼꼼하고 부정적인 시각으로 리스크를 먼저 따지는 스타일이었는데, 그래서인지 업무에서 실수가 거의 없었습니다.
그런 과장님이 어느 날 출근을 안 하셨습니다. 연락을 드렸더니 대상포진이라고, 아파서 못 나간다고 하셨습니다. 그때 저는 20대 후반이었고, 대상포진이 뭔지 솔직히 잘 몰랐습니다. 그냥 피부에 뾰루지 같은 거 나는 병인가 보다, 그 정도로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과장님 말씀이 심상치 않았습니다. 남들은 등이나 옆구리 쪽으로 발진이 나는데, 자기는 얼굴 귀 쪽에 발생했다고, 그래서 더 어렵다고 하셨습니다. 병가를 2주 신청하셨고, 제때 치료를 안 하면 얼굴과 귀 주변 신경이 위험할 수도 있다고까지 하셨습니다. 다행히 치료를 잘 받고 나으셨지만, 2주 내내 출근을 못 할 정도였습니다.
얼굴 대상포진이 더 위험한 이유
그때는 그냥 넘겼습니다. 나는 젊었고, 설마 나한테 그런 병이 올 거라고는 생각도 안 했으니까요. 그런데 50대가 되고 보니, 그때 과장님 말씀이 다시 떠올랐습니다. 얼굴 귀 쪽에 난 대상포진이 왜 더 어렵다고 하셨는지도 그제야 찾아보게 됐습니다.
대상포진은 발생 부위에 따라 위험도가 다르다고 합니다. 보통 등이나 옆구리처럼 몸통 쪽에 생기는 증상이 많은데, 귀 주변이나 얼굴 쪽으로 번지는 증상은 람세이-헌트 증후군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합니다. 안면신경이 마비되거나, 청력에 영향을 줄 수 있고, 눈 쪽으로 번지면 시력까지 위협받을 수 있다고 합니다.
과장님이 단순히 통증 때문에 2주를 못 나오신 게 아니라, 그만큼 부위 자체가 까다로운 곳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걸 당시 20대였던 저는 전혀 몰랐습니다.
서울대학교병원 자료에 따르면, 대상포진 후 신경통은 피부 발진이 다 사라진 뒤에도 통증이 수개월에서 수년간 지속될 수 있다고 합니다. 특히 삼차신경이나 안면 부위에 생긴 증상은 후유증 위험도가 상대적으로 높다고 합니다.
50대가 되어 마주한 현실
시간이 흘러 제가 50대가 됐습니다. 갑자기 주변에서 대상포진 얘기가 부쩍 많아졌습니다. 친구 한 명은 옆구리에 났다고 열흘 동안 출근을 못 했고, 아내 지인 분은 등에 크게 번져서 한 달을 고생했다고 했습니다.
사실 저는 20대 때만 해도 대상포진을 노인들이 걸리는 병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50대가 되어 보니 주변에서 생각보다 자주 듣게 되는 질환이었습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통계를 보면, 대상포진 환자의 대다수가 50대 이상 연령층에 집중돼 있다고 합니다. 50대를 기점으로 면역 기능이 눈에 띄게 떨어지기 시작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게다가 연령대가 높아질수록 대상포진 후 신경통 발생위험이 증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2013년에 P 과장님이 얼굴에 대상포진이 왔을 때 얼마나 힘드셨을지, 이제는 조금이나마 가늠하게 되었습니다.
아내와 함께 접종한 이유
주변에서 하나둘씩 대상포진 얘기가 들려오면서, 저는 아내와 상의해서 둘 다 예방접종을 맞기로 했습니다. 백신은 생백신과 사백신(싱그릭스) 두 가지가 있습니다. 생백신은 1회 접종에 10만 원대 수준이고, 사백신은 2회를 맞아야 하며 총 40~50만 원 이상이 들지만 예방률이 97% 이상이라고 합니다.
분당서울대병원 자료에 따르면 사백신은 70세 이상에서도 89.8%의 예방효과를 보인다고 합니다. 저희 부부는 비용적인 부분도 있어 생백신을 선택했습니다. 접종 부위가 약간 뻐근하고 팔을 들기 불편한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사백신은 2회를 맞아야 하지만 생백신은 1회만 접종해도 되니 편리한 부분도 있었습니다.
그 뒤로 주변에서 대상포진에 걸렸다는 얘기가 들릴 때마다, 아내와 저는 "우리 맞아둬서 다행이다"는 말을 자연스럽게 하게 됐습니다. 작은 안도감이지만, 이게 생각보다 꽤 큽니다.
접종 효과는 영구적이지 않습니다. 생백신은 접종 후 7~11년이 지나면 예방률이 크게 낮아진다고 합니다. 사백신도 일정 주기가 지나면 재접종을 고려해야 한다는 얘기가 있어서, 저도 적당한 시점이 되면 다시 맞을 생각입니다. 지역 보건소에서 지자체 지원 접종 사업을 운영하는 곳도 있으니, 거주 지역 보건소에 먼저 문의해 보시는 것도 방법입니다.
15년이 지나서야
P 과장님은 지금쯤 60대 중반이 되셨을 겁니다. 연락이 끊긴 지 오래됐지만, 그때 2주 병가를 쓰시며 고생하셨던 기억은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그분 덕분에 저는 대상포진이라는 병 이름을 처음 제대로 들었고, 50대가 되면서 그게 남의 얘기가 아니라는 걸 실감했습니다.
대상포진은 등이나 옆구리에만 오는 게 아닙니다. 귀 주변, 눈 주위, 얼굴 쪽으로 번지면 훨씬 까다로워집니다. 발진이 생기고 72시간 안에 항바이러스제를 써야 한다고 합니다. 그 시간을 넘기면 후유증 위험이 올라갑니다. 단순한 통증이려니 하고 병원을 미루다가 골든타임을 넘기는 경우가 생깁니다. P 과장님 덕분에 저는 그 시간을 알게 됐습니다.
아직 예방접종을 안 하셨다면, 한 번쯤 진지하게 생각해 보셨으면 합니다. 저는 P 과장님 덕분에 15년쯤 뒤에야 움직였지만, 여러분은 지금 이 글로 조금 더 일찍 생각해보실 수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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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게시물은 의사로서의 전문적 의학 견해가 아닌 개인적인 의견과 공개된 의료 정보를 바탕으로 작성된 글입니다. 개인의 증상과 상태에 따라 진단·치료 방법이 달라질 수 있으므로, 정확한 진단과 치료는 반드시 전문의와의 직접 상담을 통해 결정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