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건강검진 결과지
제 친구 H의 이야기를 먼저 해야겠습니다. 올해 54살인데, 2021년 직장 건강검진에서 처음 '지방간 의심' 소견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때 의사가 "술 좀 줄이시고 체중 관리 하세요"라고 했다는데, H는 결과지를 서랍에 넣어두고 잊어버렸습니다. 술자리가 워낙 많은 영업직이었고, 아내는 집에만 들어오라고 했다 합니다. 근데 몸이 딱히 불편하지도 않았으니까 그냥 살았다 했습니다.
2024년 초에 갑자기 소화가 안 되고 오른쪽 옆구리가 뻐근하다 싶어서 병원에 안 간다고 하는 걸 아내가 화를 내서 동네 내과를 갔는데, 복부 초음파 찍으면서 의사 선생님의 표정이 좋지 않은 걸 느꼈다고 합니다. "간 상태가 많이 안 좋습니다. 큰 병원 가보셔야겠어요." 그날 H가 저한테 전화했는데, 다 죽어가는 목소리였습니다. 그렇게 서울아산병원 소화기내과에서 다시 검사를 받았고, 결과는 비알코올성 지방간염(NASH)에 간섬유화 2단계였습니다. 간경화 바로 직전 단계였던 거죠.
지방간이라는 게, 별다른 증상도 없고 아프지 않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간은 '침묵의 장기'라고 불릴 만큼 술 마셔 망가지는 동안 신호를 잘 안 보낸다고 합니다. H처럼 3년을 그냥 두면, 단순 지방간이 지방간염이 되고, 섬유화가 진행되고, 결국 간경화나 간암으로 이어질 수 있어 위험하다고 합니다.
비만과 지방간의 연결고리
H의 키는 173cm, 체중은 검진 당시 89kg이었습니다. 눈으로 보기에도 살이 많이 찐 상태였습니다. BMI로 따지면 29.7, 거의 비만 직전입니다. 뱃살이 많이 나온 편이었고, 중성지방 수치도 높았습니다. 의사가 설명하길, 비알코올성 지방간의 가장 큰 원인이 바로 복부 비만과 인슐린 저항성이라고 했습니다.
술을 많이 안 마셔도 지방간이 생긴다는 사실, 많은 분들이 납득하기 어려우실 겁니다. 실제로 탄수화물 과잉 섭취, 운동 부족, 복부 지방 축적만으로도 간에 지방이 끼기 시작합니다. 40~50대 중년 남성에게 유독 많이 생기는 이유가 근육량은 줄고, 기초대사량은 떨어지고, 먹는 양은 그대로인 채로 술자리만 계속되는 패턴, 딱 그 나이대의 전형적인 생활입니다.
국가암정보센터 자료에 따르면 비알코올성 지방간질환(NAFLD)은 국내 성인의 약 30% 이상에서 발견되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중 일부는 지방간염으로, 또 일부는 섬유화와 간경화로 진행합니다. H가 예외적인 케이스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노화가 진행되면 지방을 분해하는 능력도 함께 떨어집니다. 젊을 때는 조금 먹어도 빠졌는데 이제는 굶다시피 해도 안 빠진다는 분들, 그 느낌이 맞습니다. 간의 지질 대사 능력이 실제로 나이와 함께 변합니다. 중년 이후의 체중 관리는 지금까지와는 변화해야 합니다.
H가 바꾼 것들, 6개월 후
서울아산병원에서는 H에게 약보다 생활 습관 먼저 고치라고 권했다고 합니다. 체중을 줄이면 간 섬유화 수치가 의미 있게 개선될 수 있다는 설명이었습니다. 적어도 10kg을 빼야 하는 목표였습니다.
H가 처음부터 잘한 건 아닙니다. 처음 한 달은 식단 바꾼다고 닭가슴살만 먹다가 지쳐서 포기했습니다. 그러다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주변 지인들을 통해 방향을 바꿨는데, 탄수화물을 극단적으로 줄이는 것보다 정제 탄수화물(흰쌀밥, 밀가루)을 줄이고 단백질과 채소 비중을 늘리는 방식이 H한테는 지속 가능했다고 했습니다.
운동은 처음에 걷기부터 시작했다고 합니다. 키가 그렇게 크지도 않아서 뚱뚱한 체형에 첨부터 뛰는 무리였고 숨이 약간 찰 정도의 빠른 걷기가 지방간에 효과가 있다고 들어 열심히 운동했다고 합니다. 3개월 후부터는 근력 운동을 추가했습니다. 무리하지 않고, 헬스장 가서 기구 운동 후 6개월 후 H는 7.5kg을 감량했습니다. 재검사에서 간 섬유화 수치가 한 단계 낮아졌고, 중성지방 수치도 정상 범위에 들어왔습니다. 담당 교수가 "이 정도면 아주 잘하셨습니다"라고 했다고, 전화로 알려줬을 때 H는 목소리에서 무언가를 해냈다는 성취감이 전해졌습니다.
중년 다이어트, 이것만은 알고 하자
H 케이스를 보면서 제가 정리한 게 있습니다. 50대 전후의 체중 관리는 젊을 때처럼 단기간에 확 빼는 방식이 통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급격한 체중 감량은 근육 손실을 가속시키고, 요요 이후 지방이 더 쉽게 쌓이는 악순환을 만듭니다.
근육량 유지가 핵심입니다. 나이가 들수록 근육은 자연스럽게 줄어드는데, 이 근육이 바로 기초대사량을 결정합니다. 근육이 줄면 같은 양을 먹어도 살이 더 찌는 몸이 됩니다. 유산소 운동만으로는 부족하고, 근력 운동을 병행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식단 측면에서는 당류와 정제 탄수화물을 줄이는 게 지방간 관리에 가장 직접적인 효과를 냅니다. 과당이 많은 음료수, 주스류도 포함입니다. 단백질은 체중 1kg당 1g 이상을 목표로 챙기는 게 좋습니다. 술은 솔직히 말해서, 비알코올성이라도 간이 안 좋은 상황에서 음주는 독입니다. H는 지금 거의 끊은 상태입니다.
검사는 정기적으로 받아야 합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일반 건강검진에서 간 수치(ALT, AST, γ-GTP)는 기본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 수치들이 반복적으로 높게 나온다면 복부 초음파 추가 검사를 꼭 받으시길 권합니다. 지방간은 초음파로 비교적 쉽게 확인이 됩니다.
친구로부터 나를 돌아보자
H가 처음 결과지를 받고 서랍에 넣었던 그 시간이 마음에 걸립니다. 어릴 때부터 친구로 지냈던 터라 안타까운 게 사실이고요, 살면서 술을 배제하고 살 수 있을까 생각은 하지만 직장에서 또는 영업적으로 안 먹을 수 없는 상황이 많습니다. 술을 먹고도 정상이라고 자신하는 분들이 솔직히 부럽기도 합니다만, 이제는 H를 보면서 나 자신을 좀 더 돌봐야겠다 생각합니다.
지방간은 초기에 잡으면 충분히 되돌릴 수 있습니다. 생활 습관만 고쳐도요 H가 증명했습니다. 하지만 방치하면 간경화, 간암으로 가는 상황이 생깁니다. 비만 자체도 당뇨, 고혈압, 심혈관 질환의 위험을 같이 끌어올립니다. 결국 중년의 체중 관리는 단순히 외모의 문제가 아닙니다. 50대 이후에는 내 몸이 보내는 신호를 조금 더 진지하게 받아야 할 것 같습니다. H가 그걸 참 아프게 배웠고, 저도 그 옆에서 같이 배웠습니다. 그만하길 다행이고 이제 편하게 술을 마시기보다는 운동을 자주 하기로 약속했습니다.
관련 출처
국가암정보센터 - 간암 및 지방간 관련 정보
서울아산병원 - 소화기내과 지방간 정보
국민건강보험공단 - 건강검진 및 간 수치 안내
건강보험심사평가원 - 비알코올성 지방간질환 통계
질병관리청 - 만성질환 및 비만 관련 정보
※ 본 게시물은 의사로서의 전문적 의학 견해가 아닌 개인적인 의견과 공개된 의료 정보를 바탕으로 작성된 글입니다. 개인의 증상과 상태에 따라 진단·치료 방법이 달라질 수 있으므로, 정확한 진단과 치료는 반드시 전문의와의 직접 상담을 통해 결정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