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갱년기 열감, 더위인 줄 알았습니다
아내 친구분인 S씨는 2021년 여름, 갑자기 얼굴이 확 달아오르기 시작했다고 했습니다. 처음엔 그냥 더위라고 생각했대요. 에어컨 바람이 시원하게 느껴지지 않고, 자다가도 이불을 걷어차고 일어났다고 했습니다. 54세였을 때 일입니다.
안면홍조라는 말은 들어봤어도, 그게 갱년기 증상이라고는 딱 잘라 생각하지 못했던 거죠. S씨뿐 아니라 주변에서 비슷한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느끼는 게 중년 갱년기 증상은 워낙 애매하게 시작돼서, 본인도 모르고 그냥 별 신경 안 쓰고 넘어가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갱년기 열감은 에스트로겐이 급격히 줄어들면서 체온 조절 중추가 오작동하는 것에서 비롯됩니다. 얼굴, 목, 가슴 위쪽이 갑자기 뜨거워지고 땀이 나는 증상인데, 밤에 특히 심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S씨는 이게 1년 넘게 계속됐는데도 "갱년기겠지 뭐" 하고 그냥 지나쳤다고 했습니다.
갱년기 수면장애가 본격적으로 왔을 때
열감보다 더 S씨를 힘들게 한 건 잠이었습니다. 2022년 초부터는 새벽 두 시, 세 시에 눈이 떠지기 시작했고 다시 잠들려고 누워 있어도 머릿속이 계속 돌아가고, 핸드폰 보다가 잠을 청해도, 결국 날이 밝아버리는 날이 이어졌대요.
갱년기 수면장애는 열감과 함께 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다가 열이 확 올라오면서 깨고, 식은땀이 나고, 다시 잠들지 못하는 패턴입니다. 이런 날이 반복되는 거죠, 잠을 제대로 못 자니 낮에 멍하고 집중이 안 된다고 했습니다. 저녁밥을 하다가 뭘 하려 했는지 건망증 걸린 것처럼 잊어버리고, 대화 중에 단어가 떠오르지 않아서 뭐더라 뭐더라 답답하기만 하고 말의 방향도 헷갈린다 했습니다.
그때 제가 "병원 한번 가보셨어요?" 하고 여쭤봤는데, S씨 대답이 "갱년기가 병이야?"였습니다. 그 한마디가 오래 기억에 남았습니다.
갱년기 우울감은 성격이 변한 줄 알았습니다
아내가 S씨 딸한테서 이야기를 들은 건 2022년 가을이었습니다. 어머니가 요즘 갑자기 짜증이 많아지고, 별것 아닌 일에 눈물을 흘린다고 했습니다. 내가 밥하고 빨래하는 기계냐며 가족들은 처음에 성격이 이상해진 것처럼 느꼈다고 해요.
갱년기 우울감은 단순한 감정 기복이 아닙니다. 호르몬 변화가 뇌의 세로토닌 분비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이유 없이 가라앉거나 무기력해지는 상태가 이어질 수 있습니다. 어떤 날은 아무것도 하기 싫고, 어떤 날은 사소한 말에 상처를 크게 받는 식이죠.
S씨는 그해 12월에 처음으로 산부인과에 갔다고 했습니다. 진단은 폐경 이행기, 그러니까 폐경 전환기 상태였고, 호르몬 수치 검사(FSH, 에스트라디올)에서 갱년기 진행이 확인됐습니다. 의사 선생님한테 "왜 이제 왔냐"는 말을 들었다고 했어요. S씨는 그날 아내와 통화하면서 한참을 울었다고 했습니다. 사실 아내도 별 다를 게 없는데 말입니다. 나이가 들었다는 후회, 제대로 뭐 해본 것도 없다는 후회 등등
갱년기 치료, 늦었다고 생각했지만
S씨는 이후 호르몬 치료(HRT, 호르몬 대체요법)를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유방암 걱정이 앞서서 망설였다고 했는데, 담당 선생님이 개인 이력과 가족력을 확인하고 용량을 조절해 가며 처방전을 받았습니다. 분당서울대병원 갱년기 클리닉에서 치료를 받았고, 약 3개월 후부터 열감이 확연히 줄었다고 했으나, 수면은 회복이 더뎠다고 합니다.
6개월쯤 지나서야 새벽에 깨는 횟수가 줄었고, 낮에 멍한 증상도 서서히 나아졌다고 했어요. 중년 갱년기 증상이 오래된 만큼 회복도 서두르지 않아야 한다는 걸, 치료를 받으면서 배웠다고 했습니다.
갱년기 치료는 호르몬 치료 외에도 식물성 에스트로겐(이소플라본) 보충, 규칙적인 유산소 운동, 인지행동치료 등 다양한 방법이 병행됩니다. 어떤 방법이 맞는지는 검사 수치와 증상 정도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혼자 판단하기보다는 전문의와 상담하는 것이 먼저입니다.
처음 증상을 느끼고 혼자 버텼습니다
S씨가 처음 증상을 느낀 건 2021년이었고, 병원에 간 건 2022년 말이었습니다. 1년 넘는 시간 동안 혼자 버텼습니다. 그 사이 수면이 망가졌고, 감정이 흔들렸고, 남편과 가족 관계도 조금씩 삐걱거렸습니다. 주말이면 그 집 부부와 동반 나들이도 자주 갔었는데 나이가 드니 재미없다고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 집이 맘에 안 드나 괜히 오해를 하고 있었네요
"갱년기는 다 겪는 거잖아요." 맞습니다. 하지만 다 겪는다고 해서 다 참아야 하는 건 아닙니다. 중년 갱년기 증상은 생활의 질을 크게 떨어뜨릴 수 있고, 긍정적인 생각보다는 무기력하고 뭐든지 하기 싫어지는 거 같아요, 몸도 무겁고 그렇지만 치료를 받으면 분명히 나아집니다. 지금 이 글을 읽고 계신 분 중에도 갱년기도 치료하나 별거 아니다 생각하지 마시고 다시 한번 체크해 보시기 바랍니다.
관련 참고 출처
※ 본 게시물은 의사로서의 전문적 의학 견해가 아닌 개인적인 의견과 공개된 의료 정보를 바탕으로 작성된 글입니다. 개인의 증상과 상태에 따라 진단·치료 방법이 달라질 수 있으므로, 정확한 진단과 치료는 반드시 전문의와의 직접 상담을 통해 결정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