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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전부리이야기

육개장 컵라면 후기 영하의 600미터 정상에서 맛을 깨달았다

by 리버스플 2026. 8. 5.

"둘이 엄지 치켜세우며 '이렇게 맛있는 거였어'"

 

라면 하나 먹으면서 이렇게 외친 적이 있는 라면, 한 번쯤은 이런 추억이 생각날 만한 라면이 있습니다. 바로 농심 육개장 컵라면입니다. 지금이야 친환경 종이 소재로 용기가 바뀐 것도 있지만 그때는 전부 플라스틱 용기였어요.

 

처음 나올 때는 몸에 좋지 않다고 하는 뉴스도 많이 나와서 이미지가 좋지 않던 라면이었는데, 우리나라 국민 최애 간식이자 이제는 외국에 나가도 알아주는 K누들, 그 경험담입니다.

육개장 라면, 짜장면 자리를 빼앗은 낯선 놈

국민학교 6학년쯤 우리들 사이에서 항상 듣는 말이 있었습니다. 중학교에 진학하게 되면 지금보다 아이들이 훨씬 많고 공부 잘하는 아이들도 많다. 진학에 대한 두려움이 엄습해 오던 때, 선배들이 중학교에 대한 얘기를 해줄 때 가장 귀가 솔깃한 것이 바로 짜장면이었습니다. 학교 매점에서 파는 짜장면이 그렇게 맛있다고, 꼭 먹어봐야 한다고 먼저 중학교 올라간 선배들이 얘기하는 겁니다. 지금으로 따지면 별점 5개 만점에 맛집이었던 거죠.

 

드디어 진학하게 되었습니다. 그 시절에는 급식이 없던 시절이라 도시락으로 점심을 먹을 때였는데, 도시락은 먼저 2교시에 까먹고 점심 땡 치면 매점으로 달려가는 거죠. 처음으로 짜장면집에 갔는데 그 시절에도 줄이 왜 이렇게 긴지, 3학년 선배들한테 밀려서 먼저 가도 먹지도 못하고 한참을 밖에서 줄 서서 기다리다 들어가게 되었는데, 세상에 큰 가마솥에 면을 삶아서 아저씨가 들어 올려 찬물에 면을 적셔 물을 빼고 한 그릇씩 담아서 미리 볶아놓은 짜장을 부어주면 한 그릇씩 가져가서 먹는 거예요. 단무지 반찬에 쇠젓가락 하나씩 들고서요. 그런데 세상에 그 짜장면이 인생 짜장면이었어요. 짜장면을 금방 볶아서 지금 먹는 간짜장보다 더 신선하고 맛있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짜장면이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얼마 안 가서 아저씨가 힘들었는지 짜장면 메뉴를 없애고, 간편하게 물만 부으면 팔 수 있는 컵라면이 나왔기 때문인데요. 그때 처음 맛을 본 육개장 컵라면을 지금도 잊지 못하는 게, 똑같이 줄을 서서 기다리면 짜장면은 온데간데없고 큰 가마솥에 물을 끓여서 미리 스프 까서 준비해 놓은 육개장 컵라면에 한 국자씩 물만 부어서 파는 거죠.

 

그것도 그때는 신기한 음식이라 처음 먹어 보는데, 소시지 말린 것들이 저을 때마다 나온다고 친구들이 신기해했으나 저는 짜장면이 더 맛있어서 정말 아쉬워했던 추억이 있습니다.

600미터 겨울 산행, 영하에 땀 뻘뻘

그러다 그 육개장 컵라면을 정말 맛있게 먹을 일이 생겼는데요. 우리 동네 아이들에게는 작은 야망이 하나 있었는데, 매일 뛰어노는 야트막한 동네 뒷산 대신 동네 앞에 있는 약 600미터 고지의 산을 정복해 보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겨울방학에 제일 친한 친구가 오늘 저기 올라가자 그러는 거예요. 평소에도 씩씩한 친구인데, 겨울이라 더 힘들 거 같은데 했더니 그래도 한번 가보자 이러는 거예요. 그래서 겁도 없이 그래 가자 하고 올라가기 시작했는데, 세상에 봉우리를 하나 넘으면 봉우리가 또 나오고 그러기를 몇 차례 반복했더니 정말 정상에 도착하더라고요.

 

그 기쁨이 더 컸던 것은, 정상에 올라가니 한눈에 보이는 우리 동네, 우리 국민학교, 이제 진학한 중학교, 중학교에서 새로 만난 친구들 동네까지 싹 다 한눈에 보이는 거예요. 정말 정상에 우뚝 선 기분이었습니다.

 

그 기분을 만끽하고 바람이 덜 부는 바위 아래쪽에 자리를 잡고 미리 준비해 간 부탄가스와 물, 육개장 라면을 산 정상에서 끓여 먹었는데, 와 세상에 이런 맛이라니. 둘이 엄지를 치켜세우면서 진짜 최고다 하면서 정말 잊지 못할 맛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선반에 하나 딱 남았을 때

지금도 육개장 라면만 보면 그때의 추억이 가슴속 한편에 자리 잡고 있어 항상 먹고 싶긴 하지만, 이제 나이가 들어 몸에 좋은 음식은 아니니 관리 차원에서 덜 먹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술 먹고 해장을 해야 한다거나, 먹을 게 없는데 선반 위에 육개장 하나 딱 남았을 때라든가 하면 서슴없이 뜨거운 물을 부어 먹게 됩니다.

 

먹고 나서는 항상 후회할 정도로 속이 편하지는 않습니다. ㅎㅎ 지금도 시골 어머니 집에 들를 때면 항상 보령댐 아미산 앞을 지나가게 되는데, 그 산을 볼 때마다 정상에서 느꼈던 기쁨과 그 라면 맛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먹는 코드며 음악 듣는 취향이 똑 닮은 아들이 지금은 군대를 갔지만, 편의점 가서 라면을 사 올 때면 항상 그 육개장을 사 오더라고요. 요즘 나오는 신상 라면도 많은데 아들은 항상 레트로 입맛인지 육개장 컵면을 사 오길래 이게 맛있어 했더니 젤 낫지 이러는 거예요.

 

세월이 지나도 이 맛은 아직 통하는구나 생각이 들어, 다른 애들도 많이 먹어? 그랬더니 다른 애들도 좋아한다고 하더라고요. 뭔가 아직 변하지 않았구나 하는 생각과 오래된 친구 생각이 떠오르는 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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