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갈비뼈 아래 뭔가 만져진다는 말 한마디
같은 회사에 다니던 동료 이야기예요. 다른 부서라 처음엔 서먹했는데, 점심도 같이 먹고 회식 자리에서 술도 한잔 하면서 점점 가까워졌습니다. 병원 재활치료 실장으로 일하던 사람이었어요. 의료계에 종사하다 보니 몸에 대한 감각이 남달랐던 건지, 어느 날 이야기를 나누다가 오른쪽 갈비뼈 아래로 뭔가 만져지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그 이야기를 꺼낼 때 표정이 조금 무거워 보였어요.
주변 동료들이 바로 말했습니다. "나이도 젊은데 별거 아닐 거야. 근데 그냥 넘기지 말고 빨리 검사해 봐." 그렇게 병원을 찾았고, 검사 결과가 나왔을 때 모두가 할 말을 잃었습니다. 간암이었어요. 그것도 3기 또는 4기 중증이었습니다. 얼굴 혈색도 좋고, 늘 긍정적이고 활기차 보이던 사람이었는데. 그 말이 입에서 나오질 않았습니다.
간암은 흔히 침묵의 장기에 생기는 침묵의 암이라고 불려요. 분당서울대학교병원 건강정보에 따르면, 간암은 초기에 증상이 거의 없다가 뚜렷한 증상이 나타나면 이미 병기가 진행된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오른쪽 갈비뼈 아래 윗배에 덩어리가 만져지는 증상은 이미 상당히 진행된 상태에서 나타나는 신호라고 해요. 그 동료가 스스로 이상함을 느끼고 병원을 찾은 건 다행이었지만, 그 시점에 이미 간암은 꽤 진행돼 있었습니다.
간에는 신경세포가 없다
많은 분들이 암이 생기면 통증이 먼저 온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간은 다릅니다. 간에는 신경세포가 없기 때문에 암이 자라도 스스로 통증을 거의 느끼지 못합니다. 간 기능의 70~80%가 손상돼야 몸에 이상 증상이 나타날 정도라고 해요.
국가암정보센터에 따르면 간암의 증상으로는 상복부 통증, 덩어리가 만져지는 느낌, 복부 팽만감, 체중 감소, 심한 피로감, 소화불량 등이 있지만 이런 증상이 나타날 때는 이미 상당히 진행된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증상만으로 간암을 조기 발견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는 거예요.
그 동료가 평소에 피곤하다고 했던 날들이 생각났어요. 당시엔 그냥 일이 많아서 그러려니 했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그게 신호였던 것 같습니다. 같은 회사에서 밥도 먹고 술도 마시던 사람이라 더 충격이 컸어요.
항암 치료 중에도 웃고 있었다
진단 이후 회사에도 알려졌고, 긴급하게 수술과 항암 치료가 시작됐습니다. 회사 차원에서 동료들이 십시일반 모금을 해서 돈을 모았고, 치료에 전념할 수 있도록 무급 휴가도 지원했어요. 직접 찾아가서 얼굴을 봤습니다. 항암 치료 중이라 모자를 쓰고 얼굴이 예전보다 많이 야위어 있었어요. 그런데 그 친구는 웃고 있었습니다. 긍정적인 사람이라 그랬는지, 우리를 걱정시키지 않으려고 그랬는지 지금도 모르겠어요.
2021년 4월쯤이었습니다. 고기보다는 횟집이 좋다고 해서 집 근처 식당에서 만났어요. 마주 앉아서 보기가 힘들 정도였습니다. 웃고는 있었는데 정말 힘들어 보였어요. 그렇지만 희망을 잃지 않으려고 애쓰는 모습과, 이제는 받아들일 준비를 한 듯 조금은 편안해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게 마지막으로 같이 밥을 먹은 날이었어요.
분당서울대학교병원에 따르면 음주는 간암 위험을 최대 2.6배, 비만은 1.9배, 당뇨병은 3.7배까지 높이며, 특히 B형·C형 간염 바이러스 보유자가 이 위험군에 속할 경우 간암 발병률은 훨씬 더 높아진다고 합니다. 그 동료가 어떤 위험 요인을 갖고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정기 검진을 받았더라면 조금 더 일찍 발견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지금도 남아요.
2022년 7월 세종 하늘로 떠났다
횟집에서 만난 지 1년여 뒤인 2022년 7월, 결국 소식을 들었습니다. 장례식장에서 조문을 다녀왔어요. 고인은 세종시 은하수공원에 납골됐습니다. 비슷한 나이대의 동료들이 모두 충격을 받았어요. 아무 증상 없이 건강해 보이던 사람이, 갈비뼈 아래 뭔가 만져진다는 말 한마디에서 시작해 1년 만에 이렇게 될 수 있다는 것을요.
그 일 이후로 우리 팀 직원들이 거의 모두 건강검진을 받았습니다. 평소엔 바빠서, 귀찮아서 미루던 검진을 그 친구를 잃은 뒤에야 받은 거예요. 그게 참 씁쓸했어요. 왜 이런 일이 생기고 나서야 움직이게 되는 건지.
그 일이 저한테 남긴 생각은 이렇습니다. 건강은 내가 지키려고 한다고 해서 무조건 지켜지는 게 아니에요. 우리한테 주어진 시간은 무한하지 않습니다. 건강검진은 선택이 아니라 의무라는 것,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이 당연한 게 아니라는 것. 그걸 그 친구가 떠나면서 일깨워주고 갔습니다.
간암 고위험군이라면 6개월마다 검진을 받으세요
간암 조기 발견을 위해서는 B형·C형 간염 보유자, 간경변 환자, 음주량이 많은 분들은 6개월마다 복부 초음파와 혈액 검사를 빠지지 않고 받아야 합니다. 국가암정보센터에서도 간암 고위험군은 정기 검진이 조기 발견의 유일한 방법이라고 강조하고 있어요. 국가 암검진 대상에 해당된다면 무료로 받을 수 있으니 꼭 챙기시길 권합니다.
그 친구가 그 말을 꺼내지 않았다면, 동료들이 그냥 넘겼다면, 검진을 더 미뤘다면. 생각하면 할수록 침묵의 장기라는 말이 얼마나 무거운 말인지 새삼 느껴요. 건강검진, 제발 미루지 마세요. 그 친구가 남긴 말입니다.
관련 출처
※ 본 게시물은 의사로서의 전문적 의학 견해가 아닌 개인적인 의견과 공개된 의료 정보를 바탕으로 작성된 글입니다. 개인의 증상과 상태에 따라 진단·치료 방법이 달라질 수 있으므로, 정확한 진단과 치료는 반드시 전문의와의 직접 상담을 통해 결정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