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린 시절, 돼지고기의 기억
돼지고기를 어려서는 불고기로 먹었습니다. 크게 다른 조리법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김치찌개에다 돼지고기를 넣어서 돼지고기 김칫국이나 찌개를 많이 먹었던 것 같습니다. 어릴 때는 가축으로 소나 돼지, 염소 등을 키웠는데, 이렇게 집에서 키운 돼지를 동네에 잔치가 있거나 행사가 있을 때 한 마리씩 잡아서 나눠 먹고 그자리에서 팔기도 했습니다.
냉장고가 흔치 않던 시절이라 고기를 오래 두고 먹을 수도 없었으니, 한 마리를 잡으면 온 동네가 둘러앉아 그날 하루 실컷 배를 채우는 것이 당연한 풍경이었습니다. 지금처럼 정육점에서 부위별로 골라 사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돼지 한 마리가 곧 마을의 잔치이자 이웃 간의 정이었던 셈입니다.
집에서 키우던 돼지를 잡던 날
집에서 키우던 가축을 잡는다는 것은 어린 나로서는 충격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집에서 키우던 돼지가 새끼를 낳는 모습을 다 보았고, 다 자라기까지 밥을 주며 크고 작은 여러 가지 일들을 겪으면서 정이 들었는데, 아버지께서 어느 날 돼지를 잡아야 한다며 다리를 묶어 메고 가면 그 울음소리가 온 동네가 떠나갈 정도로 크게 울려 퍼졌습니다.
불쌍하기도 하고, 아버지를 비롯한 동네 아저씨들이 야만인처럼 보이기도 해서 방에 들어가 훌쩍이다 보면 어느새 바깥은 조용해집니다. 그 갑작스러운 정적이 더 무섭고 서러워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한참을 더 울었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합니다.
눈물 젖은 저녁상의 돼지고기
그렇게 훌쩍훌쩍 울고 있다 보면 저녁때쯤 엄마가 밥 먹으라고 부르십니다. 저녁상에는 돼지고기 김치찌개며 돼지고기 불고기가 푸짐하게 올라옵니다. 그때는 그게 우리 집에서 잡은 돼지인 줄도 모르고, 우느라 허기진 배를 열심히 채웠습니다.
조금전 까지 울다가 맛있는 고깃상에 울음을 딱 그치고, 배가 고프니 맛있게 먹게됩니다. 그 고기가 제가 애지중지 키우던 바로 그 돼지인 줄도 모르고 말입니다.
철이 들고 나서야 그날의 저녁상이 어떤 의미였는지 알게 되었지만, 그 시절 시골의 삶이란 슬픔과 배부름이 한 밥상 위에 나란히 놓이는 것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것이 생명을 귀히 여기면서도 헛되이 하지 않는, 그 시절 어른들의 방식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처음 맛본 로스구이, 삼겹살의 신세계
그렇게 돼지고기를 먹었지, 삼겹살이라는 말은 들어보지도 못했는데 언제부턴가 ‘로스구이’라는 말이 생겼습니다. 시골 동네 우체국에서 근무하던 큰누님이 요즘 이 고기가 엄청 맛있는 거라며 구워 먹으면 된다고 했습니다. 아궁이에 불을 지펴 밥을 하던 시절이었는데, 그 무렵 곤로를 새로 구입해 쓰고 있었습니다.
누나가 그 곤로 심지에 불을 붙이더니 어디서 사 왔는지 로스구이 불판을 위에 얹길래 “이게 뭐야” 했더니, “먹어나 봐” 하면서 삼겹살을 구워 먹기 시작했는데, 이건 세상에서 처음 먹어 본 맛이었습니다. 야들야들 쫀득쫀득한 고기에 쌈장을 묻히고 마늘과 고추를 넣어 먹으니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날 누나랑 둘이서 개 눈 감추듯 구워 먹은 양이 지금으로 치면 두 근은 족히 되는 것 같습니다. 고기를 올리기가 무섭게 금방금방 사라진다며, 누나하고 끝내준다고 연신 감탄하며 먹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아이들도 반하는 최고의 반찬
우리 아이들에게도 삼겹살은 반찬 투정을 하지 않는 최고의 음식입니다. 이것저것 반찬이 마땅치 않을 때 삼겹살 한 근 사다가 불판에 지글지글 구워 주면 더 바랄 것이 없습니다. 아파트에 살 때는 삼겹살을 구우면 연기와 냄새가 빠지는 데 오래 걸리고 바닥도 미끌거려서 불편한 점이 많았는데, 주택으로 이사 오고 나서 가장 좋은 점은 옥상이 있다는 것입니다.
옥상에서 삼겹살을 구워 먹을 때도 있고, 비가 올 때는 안에서 먹기만 하고 현관문 앞에서 고기를 구우면 빗소리에 삼겹살 굽는 소리까지 더해져 제법 감성적인 느낌마저 듭니다. 고기 굽는 ‘치익’ 하는 소리는 누구의 식욕이든 자극하는 소리여서, 아이들도 삼겹살이라고 하면 군말 없이 밥상에 모여 앉습니다.
대패삼겹살과 삼겹살 값의 변화
학교 다닐 때는 대패삼겹살이라는 것이 없었습니다. 지금은 삼겹살을 얇게 썰어 바로 구워 먹을 수 있는 저렴한 대패집이 많지만, 예전에는 그냥 삼겹살뿐이었습니다. 대패삼겹살은 어머님께서 좋아하시는 편인데, 고기가 얇아서 씹기도 편하고 소화도 잘 되는 것 같다고 하십니다. 요즘은 웬만한 삼겹살집도 1인분에 15,000원이 넘는 곳이 대부분입니다. 예전에는 7,000원에서 8,000원 하던 것 같은데 말입니다.
먹을 때는 1인분에 얼마인지 따져 가며 먹지만, 술 한잔 들어가면 어느새 더 시키기 바쁩니다. 대패삼겹살집은 그나마 고깃값이 저렴한 편이지만 술값이 또 만만치 않아서, 계산할 때 보면 결국 그리 저렴하지도 않았구나 싶을 때가 많습니다.
알뜰살뜰, 냉동 삼겹살의 지혜
아이들 어릴 때는 외식비를 아끼려고 대형마트를 많이 다녔습니다. 코스트코나 트레이더스 같은 곳에 가서 고기를 넉넉히 사다가 구워 먹고, 남은 것은 적당량씩 소분해 냉동해 두었습니다. 그렇게 얼려 둔 고기는 찌개를 끓여 먹거나 냉동 삼겹살로 구워 먹기도 했습니다.
한 번 크게 사서 나눠 두면 한동안 반찬 걱정이 없으니, 살림하는 입장에서는 이만한 지혜가 또 없었습니다. 요즘도 마트에 고기가 저렴하게 나오면 한 번씩 넉넉히 사다가 소분해 두는 습관은 여전합니다.
고기를 사랑한 우리 집안 내력
우리 집이 유독 고기를 많이 먹는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예전에 아버지께서도 찌개에 돼지 비계라도 들어가 있어야 밥을 드셨다고 하니, 대대로 고기를 좋아하는 집안이긴 한가 봅니다.
돌아보면 돼지고기 한 점에는 어린 시절 시골 마당의 풍경부터, 눈물 젖은 저녁상, 누나와 함께한 첫 로스구이, 그리고 지금 우리 아이들과 둘러앉은 옥상의 저녁까지, 한평생의 이야기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듯합니다.
오늘 저녁에도 지글지글 삼겹살 한 판이면, 그 긴 세월의 정이 다시 한번 밥상 위에 피어오르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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