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만성 신장질환(CKD) 환자가 2020년 약 20만 명에서 2024년 말 기준 30만 명에 육박할 정도로 빠르게 늘고 있습니다. 저도 불과 몇 달 전, 건강검진 결과지를 받아 들고 이 숫자가 남의 이야기가 아님을 실감했습니다. 증상이 거의 없다는 것이 이 병의 가장 무서운 특징입니다.
사구체 여과율, 이 숫자 하나가 신장의 현재를 말한다
건강검진 결과지에서 eGFR(추정 사구체 여과율)이라는 항목을 본 적이 있으실 겁니다. 여기서 eGFR이란 신장이 1분 동안 혈액을 얼마나 걸러낼 수 있는지를 수치로 나타낸 것으로, 쉽게 말해 신장의 업무 처리 능력을 퍼센트로 보여주는 지표입니다. 정상 범위는 90~120으로 보고, 이 수치가 낮을수록 신장 기능이 떨어져 있다는 의미입니다.
제 검진 결과에서 이 수치가 45로 나왔을 때, 솔직히 처음에는 실감이 없었습니다. 의사 선생님이 "만성 신장질환 3단계"라고 설명해 주셨을 때야 비로소 심각성이 와닿았습니다. CKD(만성 신장질환)의 단계는 다음과 같이 구분됩니다.
- 1단계: eGFR 90 이상 (정상이나 신장 손상 징후 존재)
- 2단계: eGFR 60~89 (경미한 기능 저하)
- 3단계: eGFR 30~59 (중등도 기능 저하)
- 4단계: eGFR 15~29 (심각한 기능 저하)
- 5단계: eGFR 15 미만 (신부전, 투석 준비 단계)
문제는 3단계부터는 기능 회복 가능성이 급격히 낮아진다는 점입니다. 신장 전문의들 사이에서는 eGFR이 50% 이하로 내려가면 적극적인 치료에도 불구하고 기능이 계속 저하될 확률이 50%를 넘는다고 봅니다. 저는 그 경계선에 서 있었던 셈입니다.
크레아티닌 수치, 대부분 그냥 넘기는 이유
또 하나 주목해야 할 수치가 크레아티닌(Creatinine)입니다. 크레아티닌이란 근육이 에너지를 사용하고 남긴 노폐물로, 건강한 신장은 이를 소변으로 걸러냅니다. 혈중 크레아티닌 농도가 높다는 건 신장이 이 노폐물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고 있다는 신호입니다. eGFR도 사실 이 크레아티닌 수치를 기반으로 계산됩니다.
제가 이 수치를 처음 확인했을 때 떠오른 건 몇 년 전부터 반복됐던 거품뇨였습니다. 소변에 거품이 오래 남는 현상이 단백뇨(Proteinuria)의 신호일 수 있는데, 단백뇨란 신장의 여과 기능이 손상되어 단백질이 소변으로 새어 나오는 상태를 말합니다. 그때 한 번만 정확히 짚고 넘어갔더라면 지금처럼 3단계까지 오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후회가 되는 건 사실입니다.
모든 피로나 소화불량을 신장 문제로 연결하는 것은 과도한 불안을 유발할 수 있다고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저도 그 생각에 어느 정도 동의합니다. 하지만 거품뇨나 혈뇨처럼 신장과 직접 관련된 신호를 반복적으로 무시한 것은 분명히 잘못된 판단이었습니다. 증상이 없어서, 바빠서, 괜찮겠지 싶어서. 이 세 가지 이유로 많은 분들이 뒤늦게 병원을 찾습니다(출처: 대한신장학회).
신장은 회복이 안 된다, 그래서 속도를 줄이는 것이 전부다
신장 기능이 한번 손상되면 재생이 불가능합니다. 간처럼 스스로 회복하는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 점이 신장을 다른 장기와 구별되게 만드는 핵심입니다. 그래서 3단계 이후의 치료 목표는 "낫게 한다"가 아니라 "나빠지는 속도를 최대한 늦춘다"입니다. 제 주치의도 이 점을 아주 명확하게 설명해 주셨습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치료받으면 좋아질 거라는 막연한 기대를 하고 있었거든요.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신장 질환은 전 세계 사망 원인 9위에 해당하며, 그 위험도는 일반인들이 인식하는 것보다 훨씬 높습니다(출처: 세계보건기구 WHO). 그럼에도 신장 질환을 일찍 발견하고 관리하는 비율은 여전히 낮습니다. 증상이 없으니 검진 수치를 진지하게 들여다보지 않는 것이 가장 큰 이유입니다.
속도를 늦추기 위해 제가 직접 실천하고 있는 관리 방법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먼저 수분 섭취를 일정하게 유지하고 탈수 상태가 되지 않도록 신경 씁니다. 신장은 혈액을 여과하는 기관인 만큼 수분이 부족하면 그 부담이 바로 신장에 쏠립니다. 다음으로 수면 시간을 확보하는 것입니다. 야근이 잦던 시절, 저는 수면 부족을 그냥 피로 정도로 여겼는데 수면 부족은 혈압을 높이고 신장의 대사 부담을 가중시킵니다. 마지막으로 고혈압과 혈당 수치를 철저히 모니터링합니다. 고혈압과 당뇨는 신장 기능 저하를 가속시키는 가장 대표적인 원인이기 때문입니다.
검진 결과지에서 반드시 확인해야 할 두 가지
신장 건강을 지키는 가장 현실적인 첫걸음은 매년 받는 건강검진 결과지를 제대로 읽는 것입니다. 많은 분들이 "이상 없음"이라는 종합 소견만 보고 넘어가는데, 제 경험상 이건 너무 안일한 태도입니다. 수치를 직접 확인해야 합니다.
확인해야 할 핵심 항목은 두 가지입니다. 혈액 검사의 크레아티닌 수치와 소변 검사의 단백뇨·혈뇨 여부입니다. 이 두 가지에서 조금이라도 이상 소견이 나왔다면 그냥 넘기지 말고 신장내과 전문의를 찾아 정밀 검사를 받으시는 것이 맞습니다. "경계선"이나 "약간 높음" 같은 표현도 무시해서는 안 됩니다.
신장 질환은 어릴 때 가볍게 앓았던 신장염 이력이 있거나, 20~30대부터 소변에 피가 조금 보인다는 말을 들었던 경우에도 수십 년 후 본격적인 기능 저하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유전적 요인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저는 이런 배경 없이도 생활 습관 하나로 3단계까지 왔다는 점에서, 결국 누구에게나 해당될 수 있는 이야기라는 생각이 듭니다.
신장 질환을 모든 피로와 소화불량의 원인으로 연결하며 불안하게 살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검진 수치를 정확히 파악하고, 이상이 감지될 때 빠르게 대응하는 것은 불안과는 다른 이야기입니다. 그건 그냥 자기 몸에 대한 최소한의 책임입니다. 저는 올해부터 식습관을 바꾸고, 수면을 지키고, 3개월마다 신장 기능 검사를 받고 있습니다. 이미 손상된 기능을 되돌릴 수는 없지만, 지금부터라도 속도를 줄이는 것이 제가 할 수 있는 전부입니다. 혹시 검진 결과지에서 eGFR이나 크레아티닌 수치가 경계를 넘었다면, 오늘 바로 전문의 예약을 잡아 보시길 권합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의료 조언이 아닙니다. 건강 이상이 의심될 경우 반드시 전문의와 상담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