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뒷머리가 묵직했던 그 겨울
작년 겨울부터였습니다. 아침에 자리에서 일어날 때마다 뒷머리가 묵직하게 눌리는 느낌이 들었어요. 처음엔 피곤한 거겠거니 했습니다. 이 나이에 피곤하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한 거니까요. 그런데 한 달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아침엔 화장실 가다가 잠깐 눈앞이 캄캄해지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때 처음으로 겁이 났습니다.
검색을 해봤습니다. 두통에 어지럼증, 기립성 저혈압일 수도 있고 이석증일 수도 있고, 심하면 뇌 쪽 문제일 수도 있다고 나왔어요. 그 마지막 줄에서 손이 멈췄습니다. 저는 이 일을 오래 하다 보니 뇌출혈이나 뇌종양으로 가신 분들을 곁에서 많이 봐왔거든요. 그래서인지 남들보다 조금 더 무섭게 느껴졌습니다. 모르는 사람은 그냥 넘길 수 있는데, 알아버린 사람은 그게 안 되더라고요.
결국 동네 이비인후과부터 갔습니다. 원장님은 눈 움직임 검사를 하더니 이석증 같다고 했어요. 이석 정복술이라는 치료를 그 자리에서 받았습니다. 고개를 특정 방향으로 천천히 움직이는 치료인데, 받고 나서 며칠은 좀 괜찮았습니다. 그런데 두통은 여전했어요. 나아지는 건지 아닌 건지 모를 상태가 이어졌습니다.

개운치 않아서 신경과로
두 주가 지나도 두통이 가시질 않아서 이번엔 신경과에 갔습니다. 의사 선생님은 문진을 꼼꼼히 하더니, 이석증이 맞을 수도 있지만 두통이 동반되는 경우엔 뇌 쪽도 확인하는 게 좋겠다고 했습니다. MRI를 찍어보자고 했어요.
별거 아니겠지 하면서도, 괜히 손이 떨렸어요. 검사실 침대에 누워서 기계 소리 듣는 그 20분이 굉장히 길게 느껴졌습니다. 아무 생각도 안 하려고 했는데 자꾸 이런저런 장면이 머릿속에 떠올랐어요. 결과는 다행히 이상 없었습니다. 경추 쪽 긴장과 혈압 문제가 복합된 거라고 했어요. 그 말을 듣고 나서야 숨을 제대로 쉰 것 같았습니다.
같은 어지럼증과 두통인데, 이비인후과에선 이석증, 신경과에선 경추와 혈압 문제라는 다른 시각이 나왔습니다. 어느 쪽이 틀렸다는 게 아니에요. 보는 각도가 달랐던 겁니다. 그걸 그때 처음 실감했습니다.
간호부장님이 꺼낸 이야기

그때 생각났던 게 얼마 전 아침이었습니다. 원내 병원에서 일하는 간호부장님이 계세요. 가끔 아침에 티타임으로 커피 한 잔씩 하는 사이입니다. 그날도 매점 커피숍에서 앉아 있었는데, 부장님이 먼저 말을 꺼냈어요.
"어제 들어오신 분 있는데요. 젊은 분인데 참 안됐어요."
무슨 일이냐고 했더니, 몇 달 전부터 어지럼증이 있어서 동네 이비인후과를 다녔는데 이석증 진단을 받고 치료를 받았다고 했어요. 좀 나아지는 것 같았는데 두통이 계속되고 증상이 심해져서 결국 정밀검사를 받았더니 뇌종양이었다는 겁니다.
커피를 다 마시고 돌아오는 길에 자꾸 그 얘기가 맴돌았습니다. 이석증이라는 진단 하나가 몇 달을 잡아먹었던 거잖아요. 틀린 진단이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어요. 이석증은 워낙 흔하고, 증상만으로는 구분이 정말 어렵다고 합니다. 다만 그 간격이 마음에 걸렸어요. 두통이 같이 왔을 때, 거기서 한 번 더 짚어봤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요.
국가암정보센터 뇌종양 정보에 따르면 뇌종양 초기에는 두통과 어지럼증이 주요 증상으로 나타날 수 있으며, 다른 질환과 혼동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합니다. 두통과 어지럼증이 4주 넘게 이어지거나, 이석 치료를 받고도 반복된다면 뇌 영상 검사를 고려해야 한다는 게 신경과 쪽 권고라고 합니다. 한 번의 진단으로 마음을 완전히 내려놓기 전에, 몸이 보내는 신호를 조금 더 들어볼 필요가 있는 거겠지요.
2차 소견이 필요한 이유
제가 그 경험을 하고 나서 주변에 물어봤더니, 비슷한 이야기가 생각보다 많았습니다. 직장 동료 P는 수년 전 어지럼증으로 세 군데 병원을 다녔는데, 처음 두 곳에선 이석증, 세 번째 신경과에서 전정신경염이라는 다른 진단을 받았다고 했어요. 치료 방법도 달라졌고, 그쪽이 맞았다고 했습니다. P가 세 번째 병원을 가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지 모를 일이에요.
국민건강보험공단 어지럼증 건강정보에서도 어지럼증이 반복되는 경우 원인 질환을 정확히 감별하기 위한 신경과 전문의 상담을 권고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때 신경과에서 MRI를 찍고 이상이 없다는 말을 들었을 때, 처음 이비인후과에서 이석증 진단을 받았을 때보다 마음이 가라앉았습니다. 진단이 하나 더 쌓였기 때문이 아니라, 좀 더 들여다봤다는 사실 자체가 마음을 놓이게 했습니다.
흔하다고 그냥 넘기면
두통과 어지럼증은 워낙 흔하다 보니, 오히려 그냥 넘기게 됩니다. 저도 처음엔 그랬으니까요. 그런데 50대가 넘으면 그 흔한 증상 뒤에 숨어 있는 게 달라질 수 있어요. 이 나이엔 뭔가 이상하다 싶으면 일단 확인하고 안심하는 게 순서인 것 같습니다.
병원마다 진단이 다를 수 있다는 게 불신의 이유가 아니라, 더 꼼꼼하게 확인할 이유가 되면 좋겠습니다. 한 곳에서 들은 말이 전부가 아닐 수 있어요. 몸이 계속 신호를 보내고 있다면, 그 신호를 끝까지 따라가 보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이 글을 쓰면서 그 아침 커피 자리가 다시 생각났어요. 부장님도 저도 그냥 컵만 들고 서 있던 그 잠깐의 침묵이, 사실 많은 걸 말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오늘도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상쾌한 공기 마시며 걷기로 시작했습니다. 별거 아닌 것 같아도 이 나이엔 이게 쌓이는 거라고 믿어요. 여러분도 오늘 하루 몸 한번 살펴보시길 바랍니다.
관련글: 대상포진 후 신경통 이야기 허리디스크인줄 알았던 진단이 바뀐 경험도 정리해둔 적이 있습니다.
관련 출처
※ 본 게시물은 개인적인 경험과 공개된 건강 정보를 바탕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특정 질환의 진단이나 치료를 위한 의학적 조언이 아니며, 증상이나 건강 상태에 따라 필요한 검사와 치료는 달라질 수 있습니다. 정확한 진단과 치료는 반드시 전문 의료진과 상담하시기 바랍니다.